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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사진 정문
작성자 관리자
구분 전설 출처
조회 8906 작성일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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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예정 마을에 선조 때의 의병별장 박사진의 정문이 있었다. 지금은 그 건물이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지만, 그 정문에는 박사진의 전설적 행적이 얽혀 있다. 박사진은 이 고장의 어진 선비로서 청운의 뜻을 품고 글을 읽고 있었다. 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동족이 왜적에게 무참히 죽고 임금이 몽진의 길에 오르는 등 참화가 너무도 컸다. 그는 애국애족의 분심이 일고 군욕신사의 충의심이 충천하여 책을 떨치고 일어나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의 진영으로 달려갔다. 충용과 지략을 겸한 박사진은 의병 별장의 임무를 띠고 백전백승의 기백으로 먼저 청주성에 쳐들어 온 왜적을 무찌르고 승리하여 대공을 세웠다. 청주성에서 참패·후퇴한 왜적은 금산에 집결, 증배되어 결전을 벌리고자 갖은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그는 조헌이 이끄는 의병의 선봉장이 되어 금산으로 달려 승장 영규대사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700여명의 특전부대를 이루어 결전에 임하였다. 드디어 왜적의 대군을 맞아 금산 와룡평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렸다. 전투장비와 참전인원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이어 중과부적이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박사진 별장은 앞장서서 독전하고 용기 백배하여 왜군을 수없이 무찔렀다. 결국 아군의 사상자가 속출하고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왜적을 상대하여 물러섬이 없이 역전하다가 순절하였다. 그 후 평란이 되고 나라에서는 박별장의 혁혁한 공훈을 높이 사 이곳에 정문을 세우고 그 공훈을 후세에 길이 빛내게 되었다. 그 정문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하고 현대화의 물결에 따라 없어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회고지정을 느끼게 한다.